나는 아가서 1장의 '입맞춤'은 하나님과의 친밀한 삶의 출발이라고 믿는다. 이 지구상에 친밀함으로의 부르심보다 더 위대한 소명은 없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다. 이것이 바로 기독교를 다른 종교와 구별하게 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인도받게 되는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이다. 이것이 아가서의 주요 메시지이다.
아가서에는 하나님과의 친밀함의 세가지 비유가 있다.
- 하나님의 입맞춤 (1:2)
- 안음 (2:6)
- 인 맞음 (8:6)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우리가 만나는 가장 쉬운 것인 반면 가장 어려운 실제다. 여러분이 초신자이든 하나님과 오랜 시간을 걸어온 분이든 간에 상관없이 누구든지 하나님과 친밀함을 가질 수 있다. 하나님과 함께 하기 위해 교육을 받아야 할 필요도 없다. 다만 성령님과 진리 안에서 그분을 예배하는 것이 필요하다. 단지 그분의 아름다움을 바라볼 수 있는 눈이 있으면 된다.
네 눈은 왕을 그의 아름다운 가운데에서 보며 광활한 땅을 눈으로 보겠고. (이사야 33:17)
우리가 갈등하게 될 가장 힘든 일들 중 하나는 매일 일정 속에 예수님과 함께하는 시간을 따로 적어 넣는 일이다. 이것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것이다. 우리는 감당해야 할 많은 문제들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일정들이 매우 쉽게 채워지고 있고 너무나 많은 책임과 요구들이 주어진다. 이것을 실천하기 위해서는 적은 즐거움을 주는 일들은 일상 가운데 허락하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일정을 근본적으로 바꾸어야 하고 하나님 자신을 첫 번째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한다. 그분은 그 모든 가치가 있는 분 이시다. 지금 바로 매일의 계획표를 살펴보고 바꾸어야 할 부분을 고치도록 하자. 지금 바로 말이다. 지금 가서 일정표에 우선 순위를 기록할 수 있기를 바란다. 성령님께서 도우시도록 간구하시기 바란다. 지혜롭고 집중된 삶이 되기를 바란다. 예수님과의 친밀함은 우리 일정표 위에 표지가 되어야 할 것이다. 더 이상 이것을 뒤로 미루지 않기를 소망한다.
여러분은 스스로 얼마나 많이 이렇게 말하는가? "하나님과 함께 대화할 시간이 없어. 난 너무 바빠.” 당신은 이 거짓말을 실제로 믿는가? 문제는 시간 부족이 아니고 우선 순위의 부재다. 그것은 열망의 부재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열망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추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다윗 왕은 하나님을 사모하고 그분의 뛰어난 아름다움을 갈망했던 아주 훌륭한 모범적인 성경의 사례이다.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시편 27:4)
우리들은 우리의 일정 속에 요구되는 것들에 책임을 돌리는 것을 멈추어야 하며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선 앞에서 우리가 삶을 사는 방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시작해야한다. 우리는 간단하면서도 깊은 다음의 질문들에 씨름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 나의 삶은 과연 무엇인가? 무엇이 영원한 삶인가? 당신의 마음속에 이런 질문들을 다루게 될 때 그것을 둘러싼 삶을 정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 마음을 가까이하기 위해 부르짖고 있는 여러분 속에는 어떠한 것이 존재하고 있다. 여러분 속에는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얼마나 친절한 지 알기 위해 하루 종일 시간을 보내고 싶은 갈망함이 있다. 그렇지 않은가? 영원한 삶은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사랑하는 아들과의 친밀한 삶에 대한 것이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 이니이다. (요한 복음 17:3)
아무도 여러분의 삶의 양식이나 계획을 바꿀 수 없다. 여러분은 결정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마음에 하나님의 살아 있는 사랑의 불이 없이는 파산할 수밖에 없음을 인식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거기에는 분명히 나도 포함된다. 그것은 이 땅 위에서 순례자로서 살아가면서 하나님과의 친밀함 보다 못한 그 어떤 것도 포기하겠다고 하는 우리의 권리인 것이다. 아멘!
나는 친밀함의 삶은 ‘첫사랑’에 대한 것이라는 것을 확신한다. 이것은 성령님께서 아주 구체적이고 집중적인 방법으로 강조하시는 것이라고 믿는다. 하늘의 모든 것이 마치 나팔처럼 외치고 있다. “너의 첫사랑으로 돌아오라".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요한 계시록 2:4)
예수님을 우리의 일상 생활에 첫 순위에 놓을 때, 그리고 우리의 열정이 그분에게 사로 잡히게 될 때만이 그것을 첫사랑이라고 부를 수 있다. 첫사랑의 특성 중에 하나는 연인을 가능한 가까이하려는 열망이다. 첫사랑이 필요로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열망해야 하며 기도해야 하며 모든 대가를 치러 얻기를 구해야 한다. 우리의 영이 속에서 두근거리고 활기차게 될 때 인생은 매우 의미 있고 만족하게 된다. 우리의 영이 높은 영광 안으로 하나님과 함께 올라가게 될 때 이 세상에는 그보다 위대한 어떤 느낌도 있을 수 없다. 그것이 우리를 사로잡지 못하는 한 우리는 첫사랑에 대해서 설교할 수 없을 것이다.
가장 위대한 명령 (greatest commandment) 앞에 단지 위대한 사명 (great commission)을 둘 순 없다. 하나님과의 친밀감의 추구보다 사역으로의 돌진이 반복된다면 탈진(burn out)은 필연적인 것이다. 만일 우리들이 생명을 받지 못한다면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생명을 전해줄 수 있을까? 예수님을 향해 우리의 마음에 더 깊은 외침이 일어나기를 위해 성령님께 간구한다.
내게 입맞추기를 원하니 네 사랑이 포도주보다 나음이로구나. (아가서 1:2)
신랑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넘치는 열정과 아름다움으로 가득 차 있다. 모든 인간의 사랑은 공허함으로 식어져 버린다. 그분처럼 사랑하는 분은 아무도 없다. 그것이 주님이 우리의 사랑을 갈망하시고 모든 소유를 원하시는 이유다. 그분은 우리의 삶을 전적으로 드리게 되기 전까지 만족하지 않으실 것이다. 나누어진 사랑은 매우 가치가 적은 것이다. 그분은 그러한 영혼의 사랑의 속박 안으로는 들어오시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만큼 영광과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가득 찬 분이 없기 때문에 우리의 사랑을 요구하실 수 있다. 그분은 사랑과 함께 우리에게 무엇을 부여하실 수 있는지를 아신다. 그것이 바로 주님이 “모든 것을 내게 주어라. 내게 너의 첫사랑을 주어라”라고 말할 수 있는, 이 세상에 어떤 신랑보다도 수 천 배 더 권리를 가지신 이유다. 이것이 술람미 여인처럼 우리를 위한 부르심 이요 소명이다.
이것을 기억하길 원한다. 주님의 신부가 되는 것을 추구하는 데 있어서 우리는 모두가 술람미 여인들이다. 이 전적인 사랑은 우리가 도달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있다. 왜냐하면 그가 우리를 먼저 사랑했기 때문이다. 그 사랑이 예수님 자신으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를 먼저 추구하셨고 벌써 우리 마음에 사랑의 씨앗을 심으셨다. 주님께서는 그의 마음을 움직이는데 우리가 무엇을 하기를 기다리지 않으셨다. 당신께서 십자가에 먼저 달리셨다. 주님의 불타는 사랑이 그 길을 택하도록 하셨다. 우리는 하나님 마음의 연인이 되기 위해 이미 모든 자격 조건을 부여받았다. 십자가에서 주님은 모든 것을 이루어내셨다. 믿음으로 자격을 갖춘 우리는 그분과 함께 친밀함을 누리는 삶의 자리로 들어가기를 위해 그분께서 도우시도록 뜨겁게 부르짖어야 할 것이다.
Joanne Priscilla Lee
Interanational House of Prayer 중보기도 선교사
Kansas City, MO.
Based on Mike Bickle Teaching.
온라인 강의 문의 : isaiah62ministr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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